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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호 창원시보]문화자산을 잊고 사는 우리의 현주소 백태현 2018-11-25 556

[제202호 창원시보]

 

얼마 전 의창구 소답동에 있던 마애석불좌상(높이100cm, 너비55cm, 폭25cm)이 소답동 주민운동장 아래에 묻혔다가 다시 발굴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다. 얼굴이 화끈해질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다.

행정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여론의 뭇매를 맞고는 있지만 필자 또한 마애석불좌상이 소답동 주민운동장에 묻혀 있는 동안 그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무관심도 한몫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훼손되지 않고 되찾을 수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어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창원에서도 ‘의창동’은 옛 창원대도호부가 있었던 역사·문화·행정의 중심지였다. 조선 성종 때 도호부를 중심으로 읍성이 만들어졌지만 일제 강점기와 1970년대 이후 도시화 과정에서 옛 읍성 등이 대부분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동문이 있던 곳에 성벽이 남아 있었지만 그 조차도 제대로 관리 되지 못해 성돌들이 파묻히고 훼손됐다. 현재 창원읍성 동문지 복원 사업을 계획, 추진 중이지만 이미 들어서 버린 연립주택까지도 철거해야 복원할 수 있는 판국이다.

그 뿐만 아니라 현재 옛 창원지역에는 유일하게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200호로 지정된 김종영 생가가 소답동에 있다. 김종영 생가는 우리 겨레의 노래인 ‘고향의 봄’에 나오는 ‘꽃대궐’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 추상조각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우성 김종영’ 선생이 나고 자란 곳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 곳을 가보면 안채와 별채가 두 동강 나 있다. 1994년 창원시가 집을 가로질러 도로를 개설했기 때문이다. 사미루(四美樓)가 있는 별채 구문정(求文亭)은 따로 떨어져 있어 본채가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당시 함께 지정되지 못했다. 미술사적, 건축학적, 그리고 문학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 공간이지만 이미 집이 있던 곳에 빌라가 들어서버려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일은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지만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소를 잃고도 외양간 고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귀한 문화자산을 잃고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다시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역사 문화자산을 가지고 경제유발 효과 등의 경제논리를 내세우는 이들도 있겠지만 문화자산은 우리의 정체성이고, 우리의 자부심이 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