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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호 창원시보]창원으로 510년을 함께 했고 마산 100년, 진해 60년, 잠시 헤어졌다가 다시 함께 산 지 9년째, 610년 창원의 희망을 위해 역사 복원 사업 필요 노창섭 2018-10-10 453

[제199호 창원시보]창원으로 510년을 함께 했고 마산 100년, 진해 60년, 잠시 헤어졌다가 다시 함께 산 지 9년째, 610년 창원의 희망을 위해 역사 복원 사업 필요1

노창섭
환경해양농림위원장

 

[제199호 창원시보]

2010년 7월 1일 창원시민들 다수의 반대에도 통합 창원시가 출범했다. 이명박 정부의 지방 행정체계 개편의 시범 모델이었지만 정치적인 통합으로 의회에서는 사사건건 충돌했다.

통합 1대 의회에서는 청사 위치 문제로, 2대에는 프로 야구장 위치 문제로 충돌했다. 이제 통합창원시는 8년이 지나 9년째가 된다. 그리고 현재 창원시는 조선,기계 산업의 침체와 인구 유출 저출산 고령화로 위기를 맞고 있다.

새로 취임한 시장은 106만 창원시를 520년 동안 창원이란 이름으로 함께 살아온 역사,문화의 동질성을 복원하기 위한 시정을 펼쳐야 한다.

이제 창원시의 역사와 문화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사업으로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야 한다. 최초로 창원이라는 지명은 1408년 조선 태종 8년 대마도 정벌을 위한 전진 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의창현과 회원현을 합쳐 창원부로 승격하면서 탄생되어 610년이 되었다.

창원은 임진왜란 때 부민들의 공을 인정해 지금의 광역시의 위상과 비슷한 창원 대도호부로 승격됐었다. 조선시대에는 남해안의 군사적 경제적 요충지였다. 그러나 한일 합방이후 일본에 의해 마산포가 개항되고 진해에 해군 기지 사령부가 들어서면서 3개시로 분리되었지만 610년 이상 역사와 문화는 한 뿌리였다.

통합 창원시는 역사적으로 많은 유적을 공유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활동한 남해안과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조선시대 진해현 관아가 있던 진동과 삼진지역, 청동기 시대 진동리 유적, 가야시대 동읍 다호리 유적, 성산패총, 웅천읍성, 제포성, 최윤덕 장군묘지, 개항이후 많은 근대의 문화유산과 역사적 사건인 3.1만세 운동의 삼진의거, 마산 3.15의거, 부마항쟁 등의 유적과 역사적 의미가 우리지역에 산재해 있다.

이제 이러한 역사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사업을 시정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마산 100년, 진해 60년, 헤어져 이웃으로 살아온 동안 지역적 이질감은 심화되고 도시 발전은 상당한 차이를 보여 왔다. 서로 반목과 갈등은 희망이 없다. 먼저 1종 창원 역사 산업 노동 박물관 건립 추진을 전 시민적 운동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창원시 의회의 창원 역사문화 연구회 발족은 그런 운동의 시작을 의회가 주도 하겠다는 뜻으로 의미 있는 출발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듯 창원시의 역사를 잊지 않고 복원해야 한다.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지지와 참여를 부탁드린다.